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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학교행사 [학교 이야기] 산돌자연학교 학부모교육 이야기 (1) 탁월한 지성인에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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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대연 댓글 0건 조회 3,209회 작성일 25-02-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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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안교육뉴스(2024.10.23)에 기재된 기사입니다.


● 글쓴이 / 장주경 / 산돌자연학교 교장, 서울대학교 미학과 동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1999년 제1회 허균문학상 수상, 2004년 [세계의 문학]에  '고흐의 만종'으로 등단, 장편소설 [버드나무는 하룻밤에도 푸르러진다] 출간

크리스천 지성인의 양성1




오늘날의 시대의 특성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세 가지로 규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현 시대의 특성 ① : AI시대 혹은 AI시대로의 이행기


AI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첫째로 우리 시대는 AI시대, 혹은 AI 시대로의 이행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기에 이제 더 이상 ‘네티즌’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된 것처럼, 언젠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AI가 기능을 할 것이기에 ‘AI 시대’라는 말도 당분간만 사용되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시대는 무서운 속도로 AI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특히 2022년 11월에 출시된 챗 지피티 때문에 AI에 문외한이던 대다수의 사람들도 AI의 무서움을 실감하에 되었습니다. 기존의 AI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이 ‘생성형’ AI라는 것은 마치 사람처럼 공부를 하고 배워서 글을 써내는, 놀라운 ‘창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개 소리 삼아 세상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AI라고 하지요. 스스로 공부를 해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아서 질문에 답을 해주는 챗 지피티를 보면서 과연 AI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ChatGPT의 긍정적 영향 :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 기회 제공

챗 지피티가 우리 교육 현장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한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겠습니다. 그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서 ‘공부’를 시키고 그것으로는 경쟁력이 약하니까 ‘학원’을 보내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온 퍽 오래된 신념에 금을 가게 한 공로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공교육의 기본틀은 여전히 ‘지식 쌓기’ 교육인데, 그나마 지식조차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단순한 지식입니다. 물론 최근 수능에서는 ‘사고력’과 ‘문해력’ 향상을 위해 교과서에서 직접 연계되지 않은 길고 어려운 지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또한 그래서 그것을 반성하면서 다시금 EBS 연계율을 높이는 등의, 현재 이 시대의 지적 상황이 어떠한지와는 사뭇 무관한 듯한 제자리 맴돌기식 공론들이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구시대적 교육 목표와 교육 방식을 고수하면서 간신히 ‘중간기말고사’라는 ‘내신’ 권력을 통해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 시스템이나, 불안한 ‘막차’ 심리를 유발하여 학부모와 아이들을 현혹하여 돈을 벌고 있는 사교육 시장의 문제를 논하기보다 우리는 지금 전지구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는 AI 시대에 우리 아이들을 살려서 진정으로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리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지성"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한 시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AI 시대에는 지식이 아니라 ‘지성’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지식은 앞으로 결코 AI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을 기르는 교육이 어떤 것이지는 뒷부분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대두되고 있는 IB를 통한 교육 혁신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현 시대의 특성 ② : 반지성의 시대

반지성의 흐름


두 번째로 우리 시대는 반지성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규정은 AI 시대라는 규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AI 시대에 대해서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앞선다고 한다면 작금의 반지성적인 사회 분위기는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명히 일정 정도의 민주화를 이루었고 선진화도 성공한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이뤄진 값진 열매입니다. 그런데 이 산업화와 민주화, 선진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짐과 동시에 조금 특이한 현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바로 반지성의 흐름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 사회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대중사회(요즘은 이 말도 거의 사어가 되었습니다. 이미 대중사회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겠지요)가 되고 나서 이 반지성적 흐름은 더욱 뚜렷해진 것을 느낍니다. 말하자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 사회가 되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플라톤이 걱정했듯이 민주주의는 반지성인들이 다수인 사회에서는 그 사회를 되려 독재사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나치의 독일이 그랬듯이, 우매한 대중들이 스스로를 옭아맬 사회 시스템을 투표를 통해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크리스천 세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크리스천들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썩어 있거나 어두운 사회의 흐름을 ‘무반성적으로’ 따라가는 현상입니다. 미디어가 크리스천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현 시대의 특성 ③ : 반기독교적 지성인

이렇게 된 데에는 이 시대의 세 번째 특징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반기독교적 지성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지성은 반기독교적 정서와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래도 뭔가 지성적이다, 라면 그것은 바로 반기독교적이라는 것이고, 대중들은 이러한 반기독교 지성의 분위기를 미디어를 통해 반지성적으로 따라가며 이 사회 전체를 반지성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반기독교 지성이 반지성적 사회를 ‘이끌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 그것도 ‘크리스천 지성인’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즈음에서 그럼 제가 이 글에서 쓰고 있는 ‘지성’이란 것이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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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의Pierre Bamin



"지성"이란?

지성은 지식과는 다른 차원의 인간의 능력입니다. 지식을 ‘앎’이라고 규정한다면, 지성은 이 ‘앎’ 앞에 어떠한 형용사를 붙여서 표현하는 무엇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첫 번째로 지성은 ‘반성적’ 앎입니다. 두 번째로 지성은 ‘공감적’ 앎입니다. 세 번째로 지성은 ‘실천적’ 앎입니다.

반성적 앎

지성은 무엇보다 먼저 ‘반성적’인 지적 능력입니다. 지식은 그 자체로는 반성적이지 않습니다. 반성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이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키며 살피는 능력을 포함할 때는 ‘지성’이 됩니다. 우리 사회가 반지성적이라고 할 때에도 우리 사회가 이처럼 ‘되돌아서 성찰하는 힘’을 잃었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타인의 견지에서 사유하는 힘’이라는 상상력의 오에 겐자브로적인 정의도 되돌이켜 나를 바라보는 사유의 능력, 곧 지성의 진정한 의미를 상기해주는 것입니다.

공감적 앎

두 번째로 지성은 ‘공감적’인 사유 능력입니다. 지식 그 자체는 차갑고 딱딱합니다. 단순한 앎과 그것에 대한 공감적인 능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알고 활용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배웁니다.

실천적 앎

마지막으로 지성은 앎에 대한 ‘실천’을 함유한 개념입니다. 성찰하고 이해하며, 마침내 실천할 수 있을 때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성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세 가지를 지성의 가장 핵심적인 능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크리스천 지성인"이란? : 회개, 사랑, 행함을 갖춘 사람

그렇다면 ‘크리스천 지성인’이란 무엇일까요. 이러한 반성적이고 공감적이며 실천적인 능력이 크리스천에게서 나타날 때, 또는 크리스천 지식인이 이러한 세 가지 역량을 갖추었을 때 크리스천 지성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이를 하나하나 풀어보면 우선 크리스천 지성인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지식의 영역에서의 반성적 통찰 능력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회개, 나아가 자신이 속한 가정과 교회, 민족에 대한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크리스천 지성인이라면 마땅히 ‘사랑’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사랑을 이유로 수용하지 말아야 할 것을 덮어주고 용서해버리는 일들을 목도하곤 합니다. 사랑의 능력은 앞서 언급한 반성적이고 회개를 동반한 지적 능력과 결합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해와 공감의 능력은 사랑에서 나오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감각’에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 지성인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다거나, 알고는 있지만 행동은 따로 한다는 것은 지성인이 아닐 뿐 아니라 더더욱 크리스천 지성인은 아니겠지요.

크리스천 지성인은 이처럼 되돌아 반성하고 회개하며 이해하고 공감하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앞서 AI 시대, 반지성의 시대, 안티 크리스천 지성의 시대로 대별되는 이 시대에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진정한 크리스천 지성인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성인, 그것도 참된 믿음을 가진 크리스천 지성인을 길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대안교육뉴스(https://www.daeaned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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